미루어 일반 서민이라기 보다는 지배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많다. 초상화는 매우 정교하고 세밀하게 표현하는 것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초상화는 대상이 살아 있을 때 그리는 것과 사후에 그리는 것이 있었는데 생전의 실물묘사는 사진 혹은 진영이라 하고 사후의 것은 '전신도'라고 부른다.
실물묘사는 사진 혹은 진영이라 하고 사후의 것은 '전신도'라고 부른다.
옆의 인물화는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한 것으로 최초의 한글 소설인 구운몽을 쓴 김만중의 초상화이다. 한국의 초상화만큼 사실적인 섬세함으로 인격과 품격을 잘 나타내는 그림도 없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자랑할만한 그림이다.
묘사한 장면.
-원포귀범(遠浦歸帆: 멀 원/ 개 포-바다/ 돌아갈 귀/ 돛 범-돛단배)
: 먼 바다에서 돌아오는 돛단배를 묘사한 것.
-어촌석조(漁村夕照: 고기잡을 어/ 마을 촌/ 저녁 석/ 비출 조)
: 어촌의 저녁노을을 표현한 것.
-소상야우(瀟湘夜雨: 강이름 소/ 강이름 상/ 밤 야/ 비 우)
: 소강과 상
Ⅰ. 개요
조선시대는 우리 나라 미술사상 회화가 가장 다양한 양상을 보여주며 제일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였던 시기이다. 북종화, 남종문인화, 남종산수화, 진경산수화를 비롯하여 사군자, 도석화, 초상화, 풍속화, 춘의도, 영모초충도, 궁중장식화, 의궤도, 세화(歲畵), 지도그림, 무속화, 민화 등 수
묘사된다. 마치 피카소의 그림처럼 얼굴은 얼굴대로 몸은 몸대로 각기 다른 시점을 적용하여 조합한 모습이 연출된다. 또한 88올림픽의 마스코트가 된 호랑이그림은 문양처럼 도안화되어 있다. 일반 호랑이그림은 그 나름대로의 형식을 갖지만, 서민들은 호랑이라는 소재만 빌려왔을 뿐 그것에 담긴 설
목공예를 발달케 했던 것이다. 한편 불교나 도가사상도 유학이 주도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그 나름의 영향력을 지속시키고 있었으니, 불교회화와 사찰건축 및 산수화에서 특히 그러한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시대 미술의 특기할 만한 현상으로서 민화의 발생과 전개를 들 수가 있다.
그림이 아니라 삶을 위한 그림으로서 시발되며 그러한 예술의 본맥은 지금까지도 끊어지지 않고 살아 있다.
고고학자들이 주장하는 2만 년 전의 물고기 그림을 당장 믿지 않더라도 최소한5, 6천년 전에 새겨진 암각화로부터 민화사는 그 문을 열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 발견된 언양 반구대의 암각암 2
그림, 조각, 생활용품 등에 즐겨 사용하였다.
우리의 민화에서도 이러한 무병장수, 불로장생에 대한 소망을 깃들여 이 열 가지 장생물을 한 화면에 배치하여 십장생도라 이름 붙여 세화로 그리기도 하고 회갑잔치를 장식하는 수연병풍으로 쓰기도 하였다.
2) 다산(多産)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인물화를 그릴 때 형상의 묘사보다 인물 내면의 기운을 신정생동(新情生動)하는 경지로 그려야 한다는 뜻이다. 전신은 전신사조의 준말로 고개지가 처음 사용했다. 고개지는 대상의 심리 특성과 정신 풍모를 묘사하는 데 능하였다. 그는 특히 인물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는데 아주 작은 세부 묘사로 인
민화 같은 그림과 무늬는 볼수 있다. 그중에서도 암벽화의 동물, 고구려 벽화 사신도. 신선도. 해. 구름. 바위. 산 등의 장생도. 수렵도. 백제의 산수문전의 산수도 등에서 한국 민화의 연원을 밝힐 수 있다.
민화라는 용어는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유종열: 1889-1961)가 민예품 전시를 위해 분류 작업을